아직도 믿음의 짝을 찾지 못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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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나눔

제   목 또 다른 서평 - 강형신 전도사(CGNTV)
글쓴이 pwy*******
조회수 1,510 작성일 2017-05-17







조선의 신앙의 어머니, 서서평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고 고아아이를 업고 있는 서서평의 사진, 이 사진 한 장은 서서평의 삶을 알려준다. 서서평은 미혼모의 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서서평이 세 살때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 가 재혼을 하였다. 서서평의 나이 18세 때에 어머니를 찾아 미국으로 갔으나 어머니는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지 않았다. 간호대학을 다니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카톨릭 신자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서평을 더 멀리하였다. 조선에 여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은 서서평의 마음을 움직였고 조선에 선교사로 오게 하였다. 안식년을 맞이하여 미국으로 건너 간 서서평은 어머니가 그리워 찾았다. 문을 열어 서서평을 본 어머니는 서평의 차림새에 더욱 실망하였다. 조선에서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서서평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나는 너와 같은 딸을 낳은 적도 없고 너와 같은 딸을 가진 적이 없다”라고 하며 문전박대를 하였다. 서서평은 평생,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가련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조선에서 문둥병자, 고아, 과부들을 돌보았다. 고아 14명과 과부 31명을 돌보았다. 과부 중에는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소박맞아 쫓겨난 과부가 있었는데 훗날 그녀의 손자가 홍정길목사이다. 서서평은 한끼에 3원씩 지급되는 식사비에서 30전만(약900원)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고아와 과부를 위해 사용하였다. 그가 남긴 유산은 강냉이 한홉과 담요 반포가 전부였다. 추운 겨울 떨고 있는 거지에게 자신의 담요 반을 잘라 주어 담요 반쪽 만을 남기고 천국으로 입성하였다. 서서평은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주님이 조선의 버려진 사람들,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은혜의 상처가 되도록 했다고 고백을 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의료를 위한 해부용으로 내어주고 천국으로 갔다. 32살의 처녀선교사로 조선에 와서 54살의 나이로 갔다. 그녀의 천국환송예배에는 문둥병, 과부, 고아, 그녀가 세운 이일학교성경학교 여학생들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어머니, 어머니, 우리를 두고 가시면 어떡해요”하면서 울었다. 서서평은 처녀선교사였지만 조선을 품은 우리들의 어머니였다.


제주의 신앙의 어머니, 강형신전도사(1903-1985)

강형신 전도사, 그녀는 제주의 여인이었다. 결혼 첫날, 씨받이로 속아 결혼을 한 것을 알고 도망을 쳤다. 신세를 한탄하던 중 제주에서 열린 서서평의 부흥사경회에 참여하였다가 그리스도를 믿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를 위해 살기로 서원을 한다. 서서평의 이일성경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평양신학교를 다니던 중 전라도 여전도회의 파송으로 제주선교사로 들어간다. 강형신에게 있어서 서서평은 신앙의 어머니였다. 강형신은 서서평을 통해 신앙의 어머니로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제주의 신앙의 어머니들을 세우기 위해 서서평을 도와 제주부인조력회를 설립하였다.
(여자농민복음학교 앞에서 찍은 사진. 앞줄 왼쪽 두 번째가 
배사라 선교사이고 세 번째가 강형신이다.)
강형신은 모슬포, 서귀포, 성읍, 한림, 성산포 일대의 교회를 돌며 복음을 전하였다. 선교사들이 철수하고 무너진 여자농민복음학교를 고사리를 팔아 다시 세우고 제주의 여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다. 전국여전도회 모임 때 강형신은 제주 여전도회를 이끌고 참여하였을 때 일이다. 육지의 여전도회 회원들은 검은 얼굴의 제주여전도회 회원들을 무시하고 말할 권리를 주지 않았다. 강형신은 흰색 광목치마 한 부분을 가위로 잘라 붉은 색으로 물들이고 단상에 올라갔다. 그리고 그 붉은 광목조각을 단상 밑으로 던지고 “이것이 여러분들이 받아야 할 핏 값입니다”하고 내려갔다. 당시 모인 여전도회 회원들이 회개하고 강형신에게 용서를 구했다. 강형신은 홀로 사는 할머니를 위해 자신의 집을 내어주었다고 한다. 강형신의 천국환송예배에는 제주의 수많은 여인들이, 아픔을 치유받은 교인들이 참여하였다. 내가 제주 순례길 에서 만난 칠십이 된 성산포교회 이순선권사님은 강형신의 제자였다. 나는 권사님에게 물었다. “강형신은 권사님에게 어떤 분이었습니까?” 답이 간단했다. “어머니지요. 어머니!” 강형신은 제주의 여인들에게 어머니였던 것이다. 서서평이 양육한 강형신을 비롯한 제주출신 이일여자학교 졸업생들은 제주의 어머니가 되어 제주의 신앙을 지켰다.

지금 한국에는 신앙의 어머니가 필요하다.
서서평 같은 신앙의 어머니는 제주의 수많은 신앙의 어머니를 낳았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신앙의 어머니이다.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신앙의 어머니가 필요하다. 나는 우리 민족의 땅 끝 제주에서 신앙의 어머니 서서평을 만났다. 그리고 그녀를 닮은 제주의 많은 신앙의 어머니들을 만났다. 이 민족 안에 신앙의 어머니들이 끊어지지 않기를 땅 끝, 제주에서 기도했다. 

출처 :  http://www.nakdo.org/mboard.asp?exec=view&strBoardID=09SERMON&intPage=1&intCategory=0&intSeq=4112